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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14 13:42
[자료] 제주 4.3항쟁
 글쓴이 : 관리자 (115.♡.93.154)
조회 : 2,264  
   제주4.3항쟁,_지역적_저항의_재구성.hwp (620.0K) [1] DATE : 2014-03-14 13:42:43

제주 4.3 항쟁 영향과 의의 고찰



2014년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66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 탓인지 올해에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지슬’이라는 독립영화가 3월 21일에 개봉을 했고, 독립영화로는 최고의 선전을 한 채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의 사람들에게 내륙과 동떨어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 사건은 생소하면서도 머나먼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건을 화두로 이끌어와 영화를 만들어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단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제주 43사건은 오랜 세월동안 핍박받아온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3년간의 치열하고도 가혹한 전쟁이 끝이 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빨갱이’는 죽여야 할 적이었으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였다. ‘빨갱이’와 엮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살아남기란 요원한 일인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의 50년대는 43 사건을 평가하는 데에 굉장히 야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당시에 43 사건은 하나의 치욕적이면서도 회피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어떠한 공식적인 언급도 50년대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60년대에 들어와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순히 여론의 변화만이 있었을 뿐이다. 즉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의 정권이 거꾸러지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43에 대한 조명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43에 대한 진상규명 및 지속적인 관심은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가능해졌고, 80년대에 들어서 미군정의 조사 보고서의 발견과 더불어, 이에 따른 학계에서의 관심이 43 사건을 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서는 43 사건이 항쟁의 역사에서 정치적 이슈로 부각되어 나타나면서 그 의미가 변질이 되고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그리고 43 사건의 주체가 분명히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제주 43 특별법’과 같은 수혜적인 모습으로 당시의 피해자들과 그 피해자들의 유족들을 위로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 그 가해 주체를 흩트리려는 모습이 다분히 나타난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이 43 사건을 단순히 하나의 측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려고 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후 좌우합작을 통해서 통일된 정부수립을 위해 많은 민중항쟁들이 있었다. 하지만 미군정과 정부의 테러와 폭력 하에 무참히 짓밟혔다. 그런 모진 폭력과 수난을 견디면서 1년간 항쟁을 추진해 온 제주43은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민중항쟁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제주43의 배경과 과정들을 통해서 이들의 통일정부를 위한 열망이 얼마나 컸고 비참했는지, 43특별법 제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미군정과 한국정부의 태도에 대해 어떤 판단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것이 우리가 제주43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